르네 렌스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이름 | 르네 렌스 (René Llense)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콜리우르 |
포지션 | 골키퍼 |
신체조건 | 176cm |
등번호 | -[1] |
소속팀 | FC 세트 (1932-1938) AS 생테티엔 (1938-1939) AS 생테티엔 (1940-1943) EF 리옹리옹네 (1943-1944) AS 생테티엔 (1944-1945) SC 툴롱 (1946-1947) RC 비시 (1947-1949) ES 베지에르 (1951-1952) |
국가대표 | 11경기 (1935-1939) |
1. 생애[2] [편집]
1.1. 어린 시절 [편집]
렌스는 콜리우르에서 태어났지만 7살 때 아버지가 사망했고 그의 어머니와 함께 세트 지방으로 이주했다. 세트 지방을 연고로 하는 FC 세트는 당시 프랑스 축구계에서 강팀이었고 렌스는 이 팀에 입단해서 축구를 배웠다.
1.2. 선수 생활 [편집]
1.2.1. 클럽 [편집]
렌스는 1932년 FC 세트 1군에 들어왔고 같은 해 프랑스 축구계가 프로화가 되면서 새로운 리그인 디비지옹 1이 창설되었다. 당시 세트에는 렌스 외에도 이반 베크같은 선수들이 있었고 1933-34 시즌에 세트는 프랑스 축구계 최초로 더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세트의 전력은 계속 약해졌다. 렌스는 1938년까지 세트에 머물렀고 34년의 더블 이후의 리그 최고 성적은 3위였다.
1930년대엔 많은 프랑스의 프로 축구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렌스는 숙련된 노동자들과의 그것과 비교하면 2배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였지만 지금의 축구 선수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였다. 렌스도 광고 출연을 통해 추가 수입을 꾀했고 1936년에는 대표팀 동료 에티엔 마틀레르, 에드몽 델푸르, 라울 디아뉴, 알프레드 아스통, 자크 메레스 등과 함께 선수 노조의 초창기 형태 중 하나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1937-38년에 벨기에와의 경기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실패했고 196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났다.
1938년, 세트는 렌스를 AS 생테티엔에 팔았다. 이 때의 생테티엔은 디비지옹 2에서 갓 올라온 팀이었고 렌스의 세트 시절 동료이자 친구인 이반 베크가 1935년부터 뛰고 있어서 렌스가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세트가 다시 힘을 내서 마지막 우승을 차지했지만 생테티엔은 4위로 시즌을 마쳤다.
하지만 전쟁이 터졌고 렌스도 전쟁에 끌려가느라 1942년이 되어서야 다시 생테티엔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프랑스 리그는 진행되지 않았고 생테티엔은 지역 리그에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생테티엔에는 1945년까지 머물렀다.
1930년대엔 많은 프랑스의 프로 축구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렌스는 숙련된 노동자들과의 그것과 비교하면 2배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였지만 지금의 축구 선수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였다. 렌스도 광고 출연을 통해 추가 수입을 꾀했고 1936년에는 대표팀 동료 에티엔 마틀레르, 에드몽 델푸르, 라울 디아뉴, 알프레드 아스통, 자크 메레스 등과 함께 선수 노조의 초창기 형태 중 하나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들은 1937-38년에 벨기에와의 경기를 거부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실패했고 196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났다.
1938년, 세트는 렌스를 AS 생테티엔에 팔았다. 이 때의 생테티엔은 디비지옹 2에서 갓 올라온 팀이었고 렌스의 세트 시절 동료이자 친구인 이반 베크가 1935년부터 뛰고 있어서 렌스가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졌고 렌스도 전쟁에 끌려가느라 1942년이 되어서야 다시 생테티엔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프랑스 리그는 진행되지 않았고 생테티엔은 지역 리그에서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생테티엔에는 1945년까지 머물렀다.
1.2.2. 국가대표 [편집]
1.3. 이후 [편집]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편집]
그 당시의 고전적인 골키퍼들답게 렌스도 고양이처럼 점프하며 크로스를 처리하고 주먹을 이용해 공을 처리하는 플레이를 펼쳤다.
3. 뒷이야기 [편집]
- 렌스의 롤모델은 프란티셰크 플라니치카였다. 렌스는 플라니치카를 친선 경기에 만나서 그의 플레이를 보고 감동받았다고 한다.
4. 수상 [편집]
4.1. 클럽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